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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미세 플라스틱

빨래 건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의 비밀

일상의 풍경 속에 숨겨진 미세 입자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며 마르는 모습은 오랫동안 깨끗함과 평화로움을 상징해왔다. 하지만 현대의 아파트 생활에서는 자연 건조보다 건조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편리함과 속도 때문에 선택된 기계 건조가 사실은 또 다른 환경 문제, 즉 미세 플라스틱 방출의 통로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흔히 세탁 과정에서 합성섬유 옷감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온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건조 과정 역시 결코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세탁 후 건조기에 들어간 의류에서 다시 방출되는 입자는 공기 중으로 바로 흩날리기 때문에 더 은밀하고 위험하다.

건조기의 공기 순환 시스템과 입자 발생

건조기는 내부에서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켜 수분을 증발시킨다. 이 과정에서 마찰과 열이 동시에 가해지면서 합성섬유 옷감의 표면이 쉽게 손상된다.

마찰 효과: 드럼이 회전하면서 옷감끼리 부딪히고, 직조된 섬유가 조금씩 끊어져 미세 섬유 조각이 발생한다.

열에 의한 취약성: 고온은 섬유의 분자 구조를 약화시키며, 특히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는 높은 온도에서 잘게 쪼개진다.

공기 배출: 건조기 내부의 공기는 필터를 거쳐 배출되지만, 필터로 잡히지 않는 미세 입자 상당수가 실내 또는 실외로 확산된다.
이처럼 건조기는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을 공기 중으로 뿌려내는 방출기가 될 수 있다.

 

빨래 건조 과정에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

 

눈에 보이지 않는 실내 공기 오염

세탁 과정에서 발생한 미세 플라스틱은 대부분 물과 함께 하수로 흘러간다. 반면 건조기에서 배출되는 입자는 공기 중에 직접 퍼진다. 이 차이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의 성격을 크게 바꾼다.

실내에서 건조기를 사용하는 경우, 환기가 부족하면 입자가 그대로 호흡기로 들어간다.

환기를 하더라도 외부 배출구를 통해 미세 입자가 외부 대기로 흩날리며, 다시 주거지 주변 환경을 오염시킨다.

건조기의 필터에 쌓인 보풀 속에는 이미 상당량의 미세 섬유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털어낼 때 추가적인 분진이 발생한다.

따라서 건조기는 단순히 ‘빨래를 말리는 가전제품’이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을 호흡기와 직접 연결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연구와 실험이 보여주는 사실

실험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건조기의 배출 공기를 분석했을 때, 단 한 번의 건조 과정에서도 수십만 개 이상의 미세 섬유가 발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합성섬유 비중이 높은 옷을 말릴수록 방출량이 급격히 늘어난다. 면이나 리넨 같은 천연섬유는 구조적으로 잘게 부서지더라도 자연적으로 분해되지만, 합성섬유 조각은 분해되지 않고 장기간 공기 중과 환경에 남는다. 실험실에서 필터를 강화하거나 낮은 온도로 건조했을 경우 입자 발생량이 줄어드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이는 생활 속 습관이 오염의 강도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인체 건강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

건조기에서 나온 미세 플라스틱은 직접 호흡을 통해 체내로 들어간다. 호흡기 점막은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소화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보다 더 빠르고 직접적이다.

호흡기 질환: 입자가 폐포에 침착하면 만성 염증, 기관지염, 천식 악화를 일으킬 수 있다.

전신 노출: 일부 미세·나노 입자는 혈액까지 이동해 전신 순환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다.

화학 첨가제 문제: 합성섬유에는 염료, 방수제, 난연제 같은 화학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이 미세 입자와 함께 흡입되면 호르몬  교란이나 면역계 교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즉, 빨래 건조 후 느끼는 ‘보송보송한 향기’ 뒤에는 실은 건강을 위협하는 작은 입자들이 함께 흩날리고 있을 수 있다.

환경적 파급 효과 

세탁기의 경우 배출구가 하수로 연결되어 있어 정화 과정에서 일부 걸러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건조기에서 배출되는 미세 플라스틱은 공기 중으로 바로 흩날리기 때문에 정화 장치와는 무관하다. 이는 도시 대기 질 문제와 직결된다. 외부로 퍼진 미세 섬유는 다시 빗물과 함께 하천으로 들어가고, 토양에 쌓이며, 결국 해양으로까지 이동한다. 즉, 건조기 미세 플라스틱은 공기-토양-수질을 동시에 오염시키는 다차원적 문제를 만든다.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대안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지만, 발생량을 줄이는 방법은 존재한다.

건조기 사용 최소화: 가능한 한 햇빛과 바람을 이용한 자연 건조를 선택한다.

저온 건조: 반드시 건조기를 사용해야 한다면 고온보다 저온 모드를 활용한다.

세탁 망과 필터 사용: 세탁 과정에서 미세 섬유 발생을 줄이고, 건조기 필터는 자주 청소하되 물로 세척해 하수 정화 과정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좋다.

합성섬유 의류 줄이기: 면·리넨·울 같은 천연섬유 의류 비중을 늘리면 미세 플라스틱 발생 자체가 줄어든다.

개인에서 사회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제조사는 건조기 내부에 미세 섬유 포집 장치를 강화해야 하며, 정부는 미세 플라스틱 배출량을 규제하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류 산업 역시 합성섬유 사용을 줄이고, 재생 가능 소재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미세 플라스틱 문제는 단순히 한 가전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의류 소비와 세탁 문화 전체가 얽힌 복합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결의 역설을 넘어

빨래를 말리는 과정은 청결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이 다시 환경으로 흩날리며, 깨끗해졌다고 믿은 옷과 공간은 또 다른 오염원을 만들어낸다. 편리함 뒤에 숨어 있는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 진정한 청결은 ‘더 많은 세탁’이나 ‘더 강력한 건조’가 아니라, 환경과 건강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생활 방식의 변화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